떡볶이와 순대-
1. 이 시간에 야식을 부담없이 즐겨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거나,
2. 아니면 몸매를 포기한 노처녀이거나,
3. 하루 종일 쫄쫄 굶고 지금 막 퇴근해서, 먹을 밥이 없으니 저거라도(?) 먹는 상황이거나.
4. 끝으로, 지금 여기가 한국의 반대편인 유럽 어디쯤이라서 새벽 1시가 아닌 낮 1시 이거나.
나는 2번의 경우에 가깝다고 해야하는게 맞겠다.
배가 너무 고파서, 무릎나온 츄리닝과 슬리퍼 차림에 파란모자 덮어쓰고 포장마차가 즐비하고, 더불어 사람들또한 많은 서울대입구역으로 나갔다.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슬슬 30대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옷차림에서 비롯되는 시선들에게서 당당해 질 수 있다.-_-;)
바람이 쌀쌀해 잰걸음으로 걷다가, 멀리서 보이는 횡단보도 파란신호등에 '저걸 건너고 말겠다'라는 생각으로 공부하듯이 뛰었다. 물론 나의 달리기 실력으로는 멀리 보이는 횡단보도를 단숨에 그리고 멋지게 건넜을 리는 없다. 슬리퍼 신고 츄리닝 입고 엉거주춤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나는 더이상 이 동네에 얼굴 들고 다니기 힘들다. 그나마 모자가 있어 다행이다.
간발(?)의 차이로 파란불을 놓쳐버린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데, 나와 비슷한 차림의 키 큰 남자가 내 팔을 슬며시 잡으며, '저기...' 한다.
몹시 놀라서 '엇'하는 소리와 함께 팔을 뿌리치며 옆으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학부 2학년때 미팅했던 남자란 걸 단박에 알아차렸던 그 짧은 찰나에, 머릿속에선 그 시절의 대학생활들이 스쳐갔고, 또 지금의 내 옷차림이 떠올라 팔을 앞으로 둘렀다.
"꼬맹이 많이 컸네"하며 내 머리를 가볍게 만진다. (꼬맹이란다. 하긴 한 7년만이니까.)
"내가 컸나? 키는 그대론데" 하는 시답잖은 얘기를 하면서 나는 부끄럽게 웃는다. 아...
서로, 할 말이 없었던 탓에 그 짧은 시간동안 긴 침묵이 흐른다.
어디가냐는 질문에 나는 떡볶이 사러 가는 길이라 했고, 그 오빠는 편의점으로 주문한 책 받으러 간다고 얘기했다. 무슨 책일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질문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하기엔 참 생뚱맞은 것 같아서 그냥 넣어뒀다. (물어볼 걸, 살짝 후회했다. 무슨 책을 보는 지 알면, 현재의 그 사람을 알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하긴, 내가 현재의 그 사람을 알아서 뭣하리-)
그렇게 우리는 짧게 인사를 주고 받고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아이씨, 운동화라도 신을 걸... 슬리퍼가 뭐야, 젠장.'
어쨌든, 내 머리를 만진 건, 기분이 좋았다-
자야겠다 :)
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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