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는 사회생활 6년차-
나는 학창시절 소위 말하는 범생이었다. 줄곧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
학창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공부밖에 없었고, 또 나는 공부가 재미있었으니까.
내게 있어 전교 1등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까지는...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사춘기가 찾아온 게 아닌가 한다. 공부가 아닌 다른 것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아, 나는 뭔가 하나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게되는는 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고2때부터 받아보기 시작한 음악잡지. 친구가 선물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매월 꼬박꼬박 구독 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나는 음악 아니, 음악보다는 칼럼이라는 것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꿈꾸게 됐던 밑바닥에는 음악이라는 촉매제가 큰 작용을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뭔가가 되고 싶은 꿈이 생겼던 것이다.
그렇게 내가, 내 꿈에서 허우적대는 1년 동안 나는 전교 400등 밖으로 밀려났고, 고3 여름방학에 아버지께 죽지 않을 만큼 맞고 나서야, 다시 책을 손에 잡기 시작했다.
고3, 2학기 죽어라 공부해도 전교 1등은 커녕, 반에서 1등도 내겐 어려운 일이 되었다.
말도 안되는 대입시험 성적표를 받아들고선 친구들처럼 울지도 않았다. 지난 일들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원서를 낸 대부분의 대학은 불합격되었고, 그나마 안정권으로 썼던 대학에 학과 1등으로 합격하여 첫 학기 등록금은 내지 않고 입학하게 되었다. 시골에서 자란나는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하게 되어 동네 어르신들께 장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부모님은 딸자식에 대한 실망과 괘씸죄로, 나를 대학에 보내지 않으려 하셨다. (대학 입학 장학금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정말 대학 못 갈뻔 했다.)
가까스로 들어간 대학도 나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 해,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생활도 1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나마 입학하면서 1등 한 번 찍고, 그 이후로는 평점 2.5점이라는 최악의 점수로 졸업하였다.
현재 사회생활 6년차-
회사에서는 상반기, 하반기 년2회 인사고과를 실시한다. 입사동기 중 1명은 고과에서 항상 1등이다. 나는 동기 중에서 중간이나 갈지 의문이다. 고과 점수는 1등 밖에 공개하지 않으니 내 점수를 알리없다. 물론 나는 근무평정의 기준이 불명확한 점을 한탄하지만, 이건 이류 혹은 삼류의 열등감 섞인 불만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 왜, 1등과 멀어지게 된 걸까.
학창시절 어렵지도 않았던 1등 성적표가 어떻게 지금은 쳐다볼 수도 없을만큼 높아진 산으로만 생각이 될까.
물론, 등수가 인생을 말해주는 건 아니지만
때론, 등수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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